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2005.03.05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살고 있는 교포들의 특징 중 하나가 아마 소수열등의식(minority complex)일 것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남의 나라에 이민 가서 본토의 주민들 틈에 끼어 살다보면 자연히 소수열등의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아마 미국에서 가장 소수열등의식을 갖고 오래 동안 살아온 종족은 아프리칸 어메리칸(흑인)들이 것이다.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온갖 차등 대우를 받아온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은 법적으로는 그러한 차별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러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에 와서 이 소수열등의식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30년 전 시카고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도 아시아인은 나를 포함해 2,3명 정도였다. 백인학생들과 어울리자니 언어도 딸리고 모여 이야기를 하면 미식축구, 골프, 정치정세 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 나는 그러한 화제에 대하여 잘 모르니 그들과 어울리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러다 아는 한국인들과 만나 어울리면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해도 평안하고 정답고 즐겁기만 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고국의 정치나 영화, 스포츠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나서 떠들곤 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중고 대학 학창시절을 보낼 때는 클라식 음악을 즐겨 듣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시카고에서 아는 분으로부터 이미자의 노래가 담긴 테입을 받아 차에서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었다. 우리 민족의 한이 어려 있는 이미자의 노래가 그렇게 내 가슴을 파고들어 올 줄을 몰랐다. 민족에 대한 정서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우여 곡절 끝에 진보적인 종교인 유니태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단의 목사가 되어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내가 이 교단의 유일한 최초의 한국인 목사였다. 이 교단의 캘리포니아와 아리조나의 노회 목사들이 매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인 1월15일을 기해 수련회를 갖는다. 나는 거기에 참석할 때 마다다 동료 목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곤 하였다. 해피 아우어(Happy Hour) 시간에 미국목사들은 재미있게 대화를 하는데 나는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역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나는 신학교를 다니면서 "처치 커미티"라는 미국인들로 구성된 인권단체의 회원들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석하여 시카고 미쉬간 거리에 있는 한국영사관 앞에서 여러 차례 시위를 하였다. 시카고의 한인 청년들과 함께 광주의거가 일어났을 때 시위도 크게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민주화운동은 민족문제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일운동으로 바뀌게 되었고 1989년부터 이북을 드나들면서 나는 점점 재미동포들 사회에서 고립되었다. 재미동포들 속에서도 소수가 된 것이다.
재미동포들 중에는 이산가족들이 많이 있다. 재미동포 중 약 30-40%가 이북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이라고 통계를 내는 학자들이 있다. 나는 1986년부터 이산가족들이 이북을 방문하여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이북을 드나들며 일하였다. 차차 많은 이산가족들이 나를 비롯한 이 일을 도와주는 단체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이북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함께 남북공동선언을 선포하게 되었다. 북에 대한 남한 민중들의 시각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자 재미동포들의 이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아직도 조국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분들이 200만 재미동포대중들 속에서 극소수 이지만 언젠가 북미관계가 변하여 카나다처럼 미국이 이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버리고 이북과 수교하게 되면 많은 동포들이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이며 통일운동을 해온 분들에 대하여 가져온 잘 못된 시각도 변할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30년간 미국에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미국 일반시민들 대다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200만 재미동포들도 적극적으로 통일운동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남과 북이 하루속히 통일이 되어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 바라고 있다. 결국 평화를 반대하고 전쟁을 바라는 자들은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극소수 재벌들 뿐이며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키려는 세력은 제국주의자들과 그에 기생하여 이익을 보는 극소수의 수구보수세력들 뿐이다. 결론적으로 평화, 정의,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소수라는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전 세계 민중들과 대다수의 선량한 미국시민들과 한국의 대다수의 시민들이 모두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전쟁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앞에 나서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운동가들, 통일운동가들을 뒤에서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소수라는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가끔 정보계통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이 우리를 불숙 찾아와 괴롭힐 때가 있을 수 있고 이남의 국정원 요원들이 협조를 구할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당히 말하자. 우리 배후에는 대다수의 선량한 미국 시민들과 이남의 대다수 국민들이 있다고. 당신들은 그 선량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을 대변하여 일하고 있는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당신들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고. 당신들은 세금을 낸 선량한 시민들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분쟁으로 이익을 취하는 극소수의 전쟁광들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이다고. 당신들은 누구의 공무원인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나는 이제 내가 하는 평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이 너무나 정당하며 모든 인류가 다 원하는 일이며 선량한 미국시민들과 한국민들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국민들이 다 염원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소수열등의식을 갖지 않기로 했다.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우리 주위의 모든 선량한 시민들이 우리의 동지라는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