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석 탄생 94돌에 즈음하여 -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2006.03.15
올 4월15일이 김일성주석이 탄생한지 94년이 되는 날이다. 김주석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강성대국과 조국통일을 우리 7천만 민중에게 안겨주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김주석 탄생 94돌을 맞아 그가 남긴 많은 업적 중 다음 몇 가지를 회고해 본다.
김일성주석이 이룩한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은 우리 민족과 민중 더 나아가 온 인류가 나아갈 올바른 길, 즉 인류가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지도사상을 마련해 준 것이다.
주체사상은 이전 시대와는 다른 역사의 새 시대, 즉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창시된 독창적인 지도사상이다. 주석은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을 하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운동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이들과는 다른 길, 즉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에 의거하여 투쟁하는 참다운 혁명의 길을 걸었으며 혁명의 주체는 민중이며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교양하여 조직동원해야만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 진리의 핵심내용이 1930년 6월 카륜에서 개최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주석이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논문에 담겨져 있다. 그 내용의 진수는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기에 주체사상의 핵심 알맹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때를 주체사상의 창시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주석이 창시한 주체사상은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 자기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야 하며 또 개척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밝혀주는 과학적인 세계관이고 변혁학설이다. 주석은 주체사상을 창시함으로써 자주성을 위한 민중의 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었으며 인류사의 새 시대인 자주시대를 개척하였다.
두번째로 주석은 주체사상을 조선혁명에 구현하여 당대에 여러 단계의 혁명, 즉 민족해방혁명, 계급해방혁명,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투쟁을 승리적으로 영도하여 큰 업적을 남기었다.
이북에서의 사회혁명은 뒤떨어진 식민지반봉건사회의 여건에서 진행된 간고하고도 복잡한 혁명이었으며 처음부터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생소한 길이었다. 주석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포괄하는 두 단계의 사회혁명을 이룩했으며,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두 차례의 민족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끌었고, 빈 터 위에서 나라를 건설하는 두 차례의 복구건설을 성공시켰으며, 사회주의 제도를 세운 다음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계속 추진하여 민중중심의 사회주의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1946년에 시작한 토지개혁을 불과 20여일 동안에 수행하고 민주주의혁명의 전반적 과업을 1년여 기간에 완성하였으며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거창한 사회주의혁명도 4,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공적으로 끝냈다. 다른 나라에서 한 세기 이상 걸린 공업화를 불과 14년 동안에 실현함으로써 주석은 이북의 사회주의 공업화의 경이적인 역사를 창조하였다. 한 생에 그렇듯 여러 단계의 혁명을 연이어 승리적으로 이끈 주석의 업적은 경이적인 것이다.
세번째로, 주석은 주체사상으로 민중을 의식화하고 그 중에서 핵심세력을 조직화하여 조선노동당을 창건하였고 그것을 조직성과 규율성이 강한 불패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었다.
강대한 제국주의와 어려운 혁명투쟁을 해온 조선혁명의 과정에서 혁명의 핵심부대인 조선노동당을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한 불패의 영도조직으로 강화발전시킨 주석의 업적은 조선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다져 놓은 귀중한 업적으로 된다.
네번째로, 노동당의 영도의 기초 위에서 민중정권을 건설하여 민중의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정치조직으로 만든 것은 또 하나의 큰 업적으로 된다.
맑스-레닌주의 창시자들은 계급사회에서 사회의 발전은 낡은 생산관계를 새로운 생산관계로 교체하기 위한 계급투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유물사관의 원리에 의하여 정권은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이 자기의 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계급적 지배의 무기라는 관점에서 정권의 본질과 형태 문제를 다루었다. 정권의 본질을 계급적 지배의 무기라는 관점만 가지고서는 노동자계급의 정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없고 민중의 지향에 맞는 정권을 건설할 수도 없다고 주석은 진단하였다. 그는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자주성을 중심에 놓고 노동자계급의 정권의 본질을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정치적 무기로 규정하고 그 형태를 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하고 자주성을 지향하는 지식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의 통일전선에 의거하는 민중정권으로 정식화하였다. 이러한 정식화에 기초하여 해방 후 이북에 가장 민중적이고 혁명적인 민중정권이 창건될 수 있었고 그것을 가장 우월하고 혁명적인 정권으로 강화발전시킬 수 있었다.
다섯번째로 군대를 수령과 당, 조국과 민중을 위하여 기꺼이 싸우는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그 어떤 제국주의와 외세와 맞서 언제나 승리를 담보하는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킨 것은 주석의 또 하나의 큰 업적으로 된다.
여섯번째로 주석은 자립적 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이북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는 지금 비록 화려하게는 못살더라도 그 어떤 세계적인 경제파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강력한 경제적 토대를 갖게 되었다.
일곱번째로 주석은 조국통일의 역사적인 위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주석은 자신께서 우리 민족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여기고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통일위업을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 바치었다. 주석은 1972년도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발표하였으며, 1980년도에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해 주었고, 서거하기 전해인 1993년에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올바른 투쟁강령과 기본원칙을 밝혀주었고 조국통일의 주체를 마련해 줌으로 조국통일위업에 큰 공적을 남겼다.
여덟번째로, 주석은 온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고 국제사회주의운동을 새로운 기초 위에서 재건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투쟁하였다.
1992년 주석께서 80세 생신을 맞는 계기로 세계 각처에 있는 70개의 진보정당들이 평양에 모여들었다. 이 기회에 주석은 평양선언을 발표하도록 하여 세계사회주의운동을 재건하도록 하였다. 처음에(1992년 4월20일) 48명의 당수들이 이 선언에 서명했지만 지금은 270여 개의 진보적 정당들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홉번째로 주석이 생전에 이룩한 업적 중에 가장 큰 업적은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한 것이다.
주석은 김정일위원장의 어린 시절부터 주체혁명위업을 계승할 인재로 키우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이었다. 김위원장은 고등중학교 때부터 이미 주석의 노작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고전들을 주체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1964년부터 중앙당의 지도원으로부터 출발하여 과장, 부부장, 부장으로 승진하여 1974년도에는 마침내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어 주석을 옆에서 보필하였고 1994년도 주석이 서거하였을 때는 이미 중앙당에서만 만 30년을 일한 노련한 원로정치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다 주석이 웅심깊게 김위원장을 후계자로 키운 업적 때문이었다.
참으로 주석은 참된 인간애, 민족애, 인류애를 지니고 민족과 인류를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친 위대한 지도자였다. 김일성주석은 민중을 위하여 민중과 함께 많은 불멸의 업적을 남기어 민중의 마음속에 지금도 영생하고 있다. |